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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07 꿈에서 본 연극
목표는 셰익스피어2010. 8. 7. 23:11






 꿈에서 연극 한 편을 봤다. 원래 꿈을 좀 크게 꾸는 편이라 이상할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정말 선명해서 '내가 그런 연극을 본 적이 있나..' 싶었을 정도다. 일어나서 꿈을 되짚어 올라가보니 이거 꽤 재밌다. 하늘의 계시일지도 몰라! 하면서 나중에 꼭 써먹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막상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미니홈피나 들락날락 거리고 있고, 노트를 펴면 잠이 오고.... 


 꿈 얘기가 나왔으니 이야기하자면, 나는 정말 꿈을 '스펙타클'하게 잘 꾼다. 꿈을 꾸는건 푹 잠들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하는데, 그래서 내가 자도자도 졸린건가... 예전엔 그런 꿈을 꾸고 나면 의미가 있나 해서 검색도 해보고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다. 내가 꾸는 꿈은 전부 개꿈이다. 이가 마구 흔들거리며 후두두 빠지는 꿈도 아무 의미가 없고, 심지어 태몽스러운 꿈도 자주 꾼다. 그래, 그냥 꿈 꾸는 것 자체를 즐기자. 이렇게 생각한 나는 요즘 하루 열두시간을 잔다.


 언젠가는 '양파인간'에 대한 꿈을 꾼 적이 있다. 분명 기억나는건 몇몇 장면들 뿐인데도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나는 어떤 세계에 살고있는지가 명확하다. 꿈속에서는 이야기 설계가 척척 이뤄지는건지. 차라리 꿈 속에서 뚝딱하고 글을 써 내왔으면 좋겠다. 그 양파인간이 어찌되었냐 하면, 세상에는 검은양파와 하얀양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물론 검은양파가 나쁜 쪽이라는 사실은 말 안해도 알 것. 게다가 점점 검은양파는 늘어나고 하얀양파는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검은양파와 하얀양파는 겉으로 구분이 되지 않는다. 소문이나 염탐 등을 통해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냥 두 양파인간이 같이 살면 안되느냐고? 안된다. 검은양파는 하얀양파를 어떻게든 검은양파로 물들이고 싶어한다. 하얀양파는 '소수민족'이 되어 숨어살거나, 검은양파인 척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검은양파가 하얀양파를 물들이는 방법은 '총'같은 무기를 사용한다. 하얀양파에게 총을 쏘면 순간 검은양파가 되어버리고 말지만, 검은양파에게 이 총을 쏘면 안된다.


 내가 기억나는 장면은 원탁에 빙그르 둘러앉은 여러명의 양파인간들. 그리고 그 속에 숨어있는 하얀양파인간 몇 명. 물론 그 하얀양파인간 중 내가 끼어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서로를 의심하고, 눈치를 보고, 서로에게 총을 겨눈다. 그러다가 나는 정체를 들켜 마구 도망치게 되었고, 복도를 마구 달려나가 화장실 칸으로 숨었다.


 여기서 '디테일'의 절정이 나타난다. 일단 화장실 칸으로 숨긴 했는데, 문을 잠그자니 내가 숨어있다는게 너무 티나지 않는가! 그래서 문을 열어둔 채로 그 뒤에 숨어있었다. 자! 검은양파인간 하나가 나를 찾으러 화장실 앞으로 달려왔다. 이럴수가! 화장실 칸 하나하나를 살펴보며 나를 찾고 있다. 그런데 다행히도 문 뒤를 살펴보지는 않고, 대신 칸 밑으로 보이는 나의 발을 찾고 있다. 똑똑한 검은양파인걸. 그래서 나는 '꼼짝없이 들켰구나' 하는 사이에 문 뒤에 있는 '가방 놓는 선반'을 발견하게 된다.


 요즘은 화장실 문 위쪽에 가방을 걸 수 있게 되어있거나, 변기 뒤쪽으로 선반을 마련해 놓는게 대부분인데 가끔 이렇게 문쪽 아래에 작게 가방을 놓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물론 좁아서 가방이 아슬아슬하게 놓이게 되지만, 내 꿈에는 그런 선반이 나왔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당연히 그 위로 폴짝 올라가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빙고! 조금 힘들었지만 나는 들키지 않았다.


 의심스럽겠지만 이 이야기들은 꿈에서 깬 후 지어낸 것이 아니라 꿈 그 자체다. 있었던 일을 쓰려니 순식간에 타자를 칠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디테일하게 꿈을 꾸는 여성이란 말이다! 그런데 왜... 글만 쓰려고 하면 막히는지... 양파인간 외에도 기억나는 것은 정말 많다. 내가 세계에 딱 여섯명 남은 초능력자여서 세상을 구하려고 벽을 타고 다닌다거나, 초등학교에 숨어 비밀 임무를 수행중인데 파란 눈의 꼬마아이가 '뽜더!!!' 하고 외치며 뛰쳐나간다거나... 아, 기계와 인간과의 전쟁을 주제로 꿈을 꾼 적도 있다. 



 이런 꿈들에 비하면 오늘 꾼 꿈은 평범한 편이다. 그저 꿈에서 연극 한 편을 봤을 뿐이니까. 그런데도 강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내가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 꿈에서 본 연극은 '극중극'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처음부터 극의 중반까지는 뮤지컬의 성격이 더 강했던 것 같다. 화려한 의상과 조명,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춤이 가미된 공연. 그리고 공연의 인터미션에 극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다. 물론 이 인터미션은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극중에서 진행되던 공연의 인터미션이다. 하지만 굉장히 생생해서 '응? 정말 나갔다 와도 되는건가?' 하는 느낌을 준다.




 흥겨운 무대가 잠시 멈추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시간. 갑자기 무대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새로운 이벤트인가? 하고 사람들은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게다가 정장을 입은 차림새며 진하게 한 화장, 이것도 오늘 공연의 일부분이라 여기고 사람들은 다시 관람하기 시작한다. 그는 마법사다. 정말로 까만 모자까지 쓰고 있다. 처음엔 재미있을 것 같던 마술은 점점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고, 그는 객석을 향해 끊임없이 외친다. '어서 나와' ..... 그래서 어떻게 되는 이야기인지는 다 쓸 생각이 없다. 사실 스스로도 정리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고. 갑자기 스릴러물로 이야기가 변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어찌되었든 이건 사랑이야기다.


 써놓고 보니 왠지 '있음직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어라? 정말 있는 이야기인가? 하고 '마법사 무대' '마법사 연극' 등등 검색해 봤지만 다행히도 비슷한 이야기는 없는 듯 하다. 좋았어, 이 기회에 냉큼 내가 먼저 써버리자. 이 이야기는 '캣츠' 처럼 전 세계의 관객들을 매료시키고 영화화, 소설화가 되며 대 히트를 칠 거다. 나는 조앤롤링보다 성공한 작가가 되고, 한국의 셰익스피어라는 극찬을 받을테다. 그렇다면 난 점점 1에 수렴하는 학점을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


 꿈에서도 연극을 보는 의욕 넘치는 예비작가, 의 모습을 보여주려던 의도와는 다르게 야욕에 넘친 글이 되고 말았다. 나는 또 이 글만 적고 한글파일을 켜둔채 트위터를 향해 날아가겠지. 이렇게 나의 '캣츠를 뛰어넘을 걸작'은 조금씩 잊혀지....지 않기 위해 나는 이렇게 적는거다. 쓴다. 반드시 쓴다.




Posted by 규루루!